한 집에 아버지와 아들이 살았어요.
아들은 찬구 사귀는 것을 좋아해 날마다 나가서 친구들과 놀았는데 나가면 반드시 술에 취해서 돌아 왔어요.
간혹 밤을 새우기도 하고 심지어 며칠 동안 밖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어쩌다가 나가지 않으면 친구들이 몰려와 신발이 집안에 가득했어요.
술잔과 그릇이 여기저기 널렸으며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로 왁자지껄했어요.
하루는 아버지가 물었어요.
“어떤 사람들이냐?”
“모두 절친한 친구들입니다.”
“친구 얻기란 천하에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많단 말이냐?” 모두가 너를 알아주고 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란 말이지?“
”뜻이 같고 합치되어 쌍둥이 보다 가까우니 재앙과 난리를 당했을 때 서로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냐?“ 그럼 어디 한번 시험해보자.” 하루는 아버지가 돼지를 잡아 삶아서 털을 뽑아내 하얗게 만들고는 그걸 짚으로 쌌어요.
새벽닭이 울자 아들에게 돼지 짚으로 싼 것을 짊어지게 하며 말했어요.
“너와 가장 가까운 친구 집으로 가보자.” 아들과 아버지는 친구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어요.
한참 뒤 친구가 나와서 물었어요.
“자네 이리 깊은 밤에 무슨 일로 왔나?” 아들이 말했어요.

“내가 불행히도 사람을 죽였다네. 형편이 매우 급하여 시체를 이리 지고 왔다네. 부디 나를 좀 도와주게나.” 그러자 친구는 겉으로 매우 놀라는 모습에 측은히 여기는 얼굴이 되었어요.
“그래 잠시 기다리면 집안사람들 동정을 살피고 올테니.” 하고 들어가더니 한 식경을 서서 기다려도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어요.
거절하는 뜻이 분명했어요.
아버지가 탄식하면 말했어요.
”네 절친한 친구가 이 모양이냐?“ 아들은 그곳을 떠나 다른 친구를 찾아갔어요.
또 친구에게 말했어요.
“내가 불행히도 사람을 죽였다네. 형편이 매우 급하여 시체를 이리 지고 왔다네. 부디 나를 좀 도와주게나.” 친구는 몹시 불안한 듯이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더니 다른 일로 핑계를 대고 거절했어요.
아들은 다시 그곳을 떠나 다른 친구를 찾아가서 전과 같이 말했어요.
그러자 친구가 꾸짖으며 말했어요.
“아니, 이런 큰 사건으로 나에게까지 화를 입게 하려는가? 더 이상 여기 있지 말고 어서 떠나게 나도 연루될까 두렵네.” 하며 들어가 버렸어요.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와 서너 집을 더 찾아갔지만 모두 얼굴을 마주하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네 친구들이란 게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 내게도 친구가 있다. 아랫마을에 사는데 못 본 지 십 년이나 되었다. 일단 거기로 가보자.”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아랫마을로 갔어요.
아버지 친구 집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니 친구가 나왔어요. 그리고는 아들이 친구들에게 말한 것과 똑같이 말했어요.
그러자 그 사람이 깜짝 놀라며 두 사람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얼른 들어오게 일단 사람들이 보기 전에 여기를 파서 시체를 감추세” 하며 삽과 곡괭이를 가져와 안방 구들을 들어내려고 하였어요.
이러자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어요.

“이사람 괜히 놀라지 말게. 온돌도 부술 필요가 없다네.” 그러면서 짚으로 싼 돼지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저건 삶은 돼지야 사람이 아니라네.” 이어 그간의 일에 대하여 한바탕 상세히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러자 친구도 삽을 내려놓으며 읏었어요.
서로 손을 잡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 술을 내오고 돼지고기도 먹으며 여러 해 동안 쌓인 회포를 풀었어요.
얼마 뒤 작별을 고하며 말했어요.
“우리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자주 못 보더라도 마음만은 서로 통하며 살자구.” 그러고는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 왔어요.
아들은 매우 부끄러워하며 다시는 친구 사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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